우리가 스포츠 중계에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 – 경기장의 카메라

해외축구중계

축구나 농구의 중계 카메라는 보통 “하이 앵글”로 선수들을 보여준다. 축구와 야구의 경우는 많은 선수들의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버즈 아이 뷰(조감도)”를 쓰는 경우도 있다. 야구 중계의 카메라는 타자와 투수의 심리 싸움을 거의 눈높이에서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미세한’ 하이 앵글인 듯하다). 농구와 축구에서도 선수의 바로 옆에서 촬영하는 “아이 레벨 숏”이 있다. 속도감이 있는 농구와 축구에서 이런 숏을 활용하려면 카메라는 트래킹으로 선수를 따라다녀야 한다. “로우 앵글”로 선수를 비추는 경우는, 특집 영상에서 특정 선수를 조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경기장의 카메라는 대부분 “딥 포커스(전심초점)”로 화면 전체를 고르게 드러낸다. 한 선수에 초점을 맞추면 편파 중계인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초점 이동이 스포츠 중계에는 거의 없다. 광각 어안 렌즈로 경기장에 입체감과 속도감을 부여했다. 스포츠 중계에서는 카메라의 각도와 렌즈뿐 아니라 위치도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카메라는 보통 선수들의 플레이를 “롱 숏”으로 보여준다. “익스트림 롱 숏”(창공에서 마천루를 보여주는 식)이나 “극단적 클로즈업”(인물의 눈과 코 정도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식)은 거의 없다. 선수가 찬스를 놓치고 아쉬워하는 모습이나 골을 넣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클로즈업 식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경우도 특정 선수의 얼굴 표정만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지는 않는다. 이 경우 선수의 얼굴과 어깨 정도까지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클로즈업과 미디엄 숏의 중간 정도). 땀에 전 선수의 모공까지 드러낼 우려가 있는 극단적 클로즈업을 선수 보호(?) 차원에서 지양하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프로 선수의 이미지는 중요하니까). 야외 스포츠인 축구나 야구에서는 돔 구장(스타디움) 위에서 익스트림 롱 숏으로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경기장을 메운 관객이 부각되고, 선수는 거의 점으로 보일 듯 말 듯 한다). (클로즈업에 가까운) 미디엄 숏. 선수가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시점 숏”은 영화나 드라마에는 있지만 구기 종목에는 없다(시점 숏은 특정 선수의 관점에 동화되게 만든다). 전체 상황을 조망하는 숏과 몇몇 선수의 시점 숏을 영화처럼 혼합하면 어떨까? 하지만 시점 숏을 경기 중계에 활용하는 데는 기술적/현실적(문화적) 문제가 있다. 구기 종목에서 시점 숏을 활용하려면 선수의 몸에 카메라를 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경기를 하는 선수가 불편하다. 요즘은 소형 액션캠도 있지만, 거친 몸싸움을 하는 선수의 몸에 그걸 달면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액션 캠을 통해 선수의 거친 호흡과 가벼운 비속어 등이 노출될 우려도 있고 말이다(누구나 아쉬운 상황에서 내뱉는 탄식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특정 선수의 미세한 움직임이 타 팀에 의해 나노 단위로 분석될 우려도 있다(이천 년대 중반에 “스타크래프트”의 리플레이가 공개되었을 때도 그랬다).​양궁 중계에는 시점 숏이 있다. 시청자는 선수가 보는 과녁을 렌즈의 초점을 오가며 볼 수 있다. 이스포츠 E-Sports에서는 선수의 개인화면이 시점 숏의 역할을 한다. FPS(1인칭 슈팅) 게임의 시점 숏은 그야말로 영화식 시점 숏이다. FPS(First Person Shooting)라는 장르명 자체에 이미 1인칭 First Person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구기 종목 시청자는 선수보다 높고 유리한 위치에서 전반적인 게임 상황을 지켜본다(전지적 시점). 예컨대 <스타크래프트> 경기의 시청자는 맵핵을 켠 채 게임을 보는 거나 다름없다. 시청자는 전지적 시점의 시청각적 쾌감을 맛본다. 해설자의 보이스 오버는, 경기장 전체를 아우르는 카메라와 함께, 시청자에게 폭넓은 정보를 준다. 우리는 적어도 스포츠 중계를 보는 동안은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위치에 있다. 이는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농구 중계에서 가장 흔한 롱 숏이다. 우리는 모든 선수의 움직임을 위에서 바라본다. 해설자도 우리를 돕는다. 이런 상황에서 훈수충이 등장한다. 훈수는 게임을 관람하는 또 하나의 재미다. 선수를 안주로 씹으며 경기를 보는 시청자도 많을 것 같다. “왼쪽으로 패스 줬어야지!” 전능한 위치에서 모든 플레이어의 행동을 관망할 수 있는 건 스포츠 시청자의 특권이다(현장 관람보다 티브이 시청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우리는 평소에 플레이어(직장인, 부모, 학생 등)로 활동하며 앞이 깜깜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스포츠 중계는 이런 우리의 불만을 해소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