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4박 5일 여행 (day 3-4) [중국한달살기] 중국여행일기7_상해근교 쑤저우당일치기, 졸정원-핑장루-산탕지에, 중국기차역이용법❗ [태국여행]1일차/힐링 /해외여행/ 우정여행 / 파타야/방콕 /아시아티크 /센트럴워크/반다라스위트실롬/더베이스센트럴파타야시뷰/여행팁/ 베트남-하이퐁[Big C mart/베트남과자/베트남여행리스트/베트남쌀국수/베트남커피] 키아수

상조

“같은데 다르다” 상대방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사람 사는 건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조금씩 차이점이 있다”는 한 마디를 덧붙이게 된다. 그런데도 상대방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나를 쳐다보면 “싱가포르도 다 사람 사는 곳이야”를 시작으로 본격 부연설명이 시작된다. 먼저 적도 기후부터 의식주가 어떻게 다른지 차례차례 설명하게 되는데, 장광설은 전자인 ‘같은데’보다 후자 ‘다르다’라는 곳에 더 초점을 둘 수 밖에 없다. 공통점보다 차이점을 먼저 드러내는 것이 이문화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겠지만 ‘다르다’를 앞세우다 보니 이방인의 정체성만 더욱 선명해진다. 그래도 남다른 장점을 떠올려보면 여러모로 타국생활이 매력적이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미세먼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시사철 창문을 열어두고 살 수 있다는 점, 더군다나 여름 티셔츠 한 장, 홑이불 한 장, 슬리퍼 한 켤레, 에코백 하나로도 1년을 날 수 있다는 점, 국적불문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점, 두리안의 참 맛을 알게 된다는 것, 싱글리쉬가 점점 친근해진다는 점을 헤아려보면 오히려 내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드라마, 케이팝, 김치, 분단국가, 성형천국을 관통하는 정체성을 헤아려보는 것부터 버겁다.​ 비난 받는 것이 두렵다는 의미의 키아수(驚輸, kiasu)는 싱가포리안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보여준다. 호키안어로 욕심 많고 이기적이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는데 구체적으로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고 항상 비난을 피해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어원은 지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중국어에서 비롯됐다. 현재는 키아수, 키아수이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는 태도라면 키아수에서 파생된 키아시(驚死, kiasi)는 위험을 피하는데 극단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고는 못 살겠다는 키아수의 근원은 생존본능이라는 의견도 있다. 반세기를 넘긴 독립 역사와 작은 영토, 동남아라는 지리적 특성 뿐만 아니라 문화가 다른 주변국과의 관계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정신이라는 분석이다. 부존 자원이 없어서 키아수 정신 덕분에 경제적 부와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는 믿음이 강하다. 자립심은 기본, 헝그리 정신은 생활, 평가에서는 언제든 앞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은 상징적 정체성으로 되물림 된다. ​ 키아수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한국도 교육열이라면 뒤지지 않는데 주말 오전부터 발 디딜 틈 없는 학원 빌딩 엘리베이터를 타보거나 카페나 음식점에서 문제집을 맞잡고 공부하는 엄마와 아이, 서점 장바구니 한가득 교과서를 구입하는 학부모들, 유치원 전과정인 프리 스쿨이 넘치는 풍경을 자주 마주치다보면 싱가포르 교육열도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동서고금 교육열은 한결 같은데 방법과 정도만 다를 뿐이다. 최고에 대한 집착과 집념은 한국도 뒤지지 않는데 키아수를 받아들이는 문화적 감수성은 차이가 있다. 아티스트 조니 라우(Johnny Lau)는 만화 미스터 키아수(Mr. Kiasu)시리즈로 현대 싱가포리안을 재현했다. 체력 검사에서 조차 1등하기 위해 전날 테스트 차트를 전부 외워버리는 군인 이야기는 1등 아니면 못견디는 키아수이즘을 웃음으로 비틀었다. 한 패스트푸드 회사는 특별한(extra) 재료와 특제(extra) 소스를 곁들여 키아수 햄버거를 팔았다. 싱가포리안들도 스스로의 유별남을 안다. 자리 맡으려고 우산이나 휴지팩을 테이블에 올려놓는 행동이 부끄럽고 불편해하면서도 서로 참아준다. ​ 키아수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곳은 한 토론회였다. 각계각층의 패널이 무대에 서서 키아수에 대한 찬반 입장을 펼치는 열띤 토론회였다. ‘100분 토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근엄함은 어디가고 관객들이 발구르면서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현장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격조 높은 셀프디스에서 싱가포리안의 유머코드도 읽을 수 있다. 그 토론회 이후가 진짜 싱가포리안 친구들을 이해하는 기점이 됐다. 요즘은 잊혀질까봐 두려운 #FOMO(fear of missing out)가 뜬다. 밥은 굶어도 파티는 절대 빠질 수 없다는 밀레니얼, 인스타그램 세대를 아우르는 문화코드다. ‘같은데 다르다’는 모순 말뭉치 사이에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2019년 3월에 작성된 글입니다.